무안생태갯벌센터 개관식
5월 17일에 무안생태갯벌센터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처음 문을 연지 4년여가 흐른 지금에야 늦게나마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무안갯벌교육프로그램 시연대회
다음날 5월 18일 무안생태갯벌센터의 부대행사로 무안갯벌교육프로그램 시연대회가 열렸습니다.
<교육시연이 모두 끝나고 교육시연자들과 평가위원들이 모여 평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수법의 기술적 부분 등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제3회 낙지와 함께 1박 2일 무안갯벌 생태여행
<참가자들이 첫째 날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둘째 날 포토스토리 텔링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무안갯벌의 추억을 진지하게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에 의미있는 여행이란 이런 것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4월 5일은 식목일이었다. 아마 모르고 지나간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역시 공휴일이 아니면 많이 잊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식목일이 공휴일이었을 적에 식목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유명 인사들이 야산에 올라 묘목을 심는 모습을 곧잘 봤었던 것 같다. 묘목심기 행사를 마친 후에는 '나무를 많이 심고 자연을 보호하자'란 구호가 어김없이 뒤를 이었던 것 같다.
올해도 대통령이 식목일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를 한곳이 4대강 공사현장 한가운데인 남한강의 여주였다고 하고, 그 자리에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녹색성장을 다짐했다고 한다. 4대강 사업, 이명박, 나무, 아이들, 그리고 녹색성장… 이런 것들이 이번 식목일을 특별한 식목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벌인 식목일 퍼포먼스 주제는 '4대강 사업'
권력자들이 아이들을 대동하고 매스컴에 나오는 모습은 우리가 곧잘 보는 모습이다.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야욕적이고 정략적인 모습을 중화시키는 데는 아이들만 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나와서 4대강 사업 현장에서 한 식목일 퍼포먼스의 주제는 역시 4대강 사업이었다. 옛날 여주 남한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사로 조경화가 된 남한강을 보고 "정비가 싹 돼서 이 지역이 천지개벽 한 것 같다"며 4대강공사의 찬사를 늘어놓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천지를 개벽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4대강 공사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은 강의 생명들과 생존권을 잃은 강변의 농민들에게는 천지가 개벽 될 정도의 절망이 지나간 뒤였음을 알고 한 말이었을까? 녹색의 옷을 입고 회색의 파괴를 일삼는 4대강 공사현장에서 아이들의 순수성을 배경삼아 탐욕의 시대를 말하는 모습에서 4대강 사업의 비극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는 것이다. 탐욕에 대해 순수하고 당당한 이명박 대통령의 '천진난만함'이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알고 있을까
여주 남한강변에서 이 대통령과 같이 식목일 행사를 함께하고 있었던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있던 그곳에서 수달, 표범장지뱀, 흰목 물떼새, 단양쑥부쟁이 등 수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4대강 공사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의 아이들을 보낸 그곳이 4대강 공사로 인한 안전사고, 보트전복 사고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며,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역시 같은 4대강 공사현장인 팔당이란 곳에서는 4대강 공사로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아직도 처절한 생존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실수라고 한다지만 알고 그랬다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제일 힘들고, 함부로 가르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4대강 공사 현장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곳이라면, 왜 4대강 공사가 거의 완성되어가는, 공사 후반기인 지금에야 보여줬을까? 한창 굴착기 삽날로 산을 부수고 강을 가르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에는 환경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의 출입도 통제하면서 공사모습을 남이 알까 무서워, 철저히 숨겼던 그곳을 왜 지금에 와서 보여 주냐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찾아간 여주 남한강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안다. 지금의 남한강의 모습과 자신들이 2년 전 물장구 치며 놀던 여강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아이의 추억을 빼앗은 탐욕이 그 사실을 모르는 또 다른 아이들을 탐욕의 공모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탐욕에 대해 순수해지고 당당해지라고 말하는 이 괴물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만에 내게 다가온 식목일은 옛날 초록의 식목일이 아닌 회색의 식목일로
다가왔다.
매일 저녁 7시반, 여의도 국회 앞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이 차가운 초겨울바람을 맞으며 미사를 연다. 새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은 수십개의 촛불이 신부님들과 미사 참가자들을 안온하게 데우고 있지만 곧 찾아올 본격적인 한겨울의 추위에도 촛불의 온기가 계속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농지가 파괴되었거나 농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내년에 씨를 뿌릴 수 있는 땅을 되 찾기 위해 이번 겨울을 편히 쉬지 못한다. 또한 작년에 이어 이번 겨울에도 국회 앞 찬 바닥에서 농성을 펼칠 활동가들이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정부의 4대강 사업 때문이다.
비록 사업시행은 각 강별로 해당 도의 지자체들이 맡아서 하고 있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중앙정부 차원의 국가적인 사업으로 홍보하고 추진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란 국민적인 요구나 수요가 있는 사업을 의미하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적인 반대는 들어 봤어도 국민적인 요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적 요구도 없는 불요불급한 일개 토목사업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과잉의미화하여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전시성이 짙은 4대강사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업반대 입장을 국가주의 논리로 누루려는 사업추진세력의 의도도 깊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주의에 매몰된 체 추진되고 있는 4대강사업
현 정권인사들은 '국가적 사업'라는 말을 신성하고도 검증이 불필요한, 따라서 비판해서는 안되는 그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4대강사업 논쟁과 관련해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환경적, 공학적, 법적 근거에 기반한 4대강사업 반대 주장에 대응하는 정부를 비롯한 찬성측 주장의 특징은 4대강사업에 대한 모든 비판들은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을 방해하는 정치적 주장으로 매도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즉 4대강사업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국가적 사업에 왜 딴지를 거느냐', '국가적 사업을 왜 정치 쟁점으로 만드느냐', '국가적 사업에 왜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느냐' 란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관념에 포섭된, 지극히 반민주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어 4대강 논의 자체가 국가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4대강 사업이 단지 환경관련 사안을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정치적 사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수 국민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이 정부의 행태로 볼 때 현 정권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국가절대주의에 경도된 국정운영을 일삼고 있는 현 정부가 바라보는 국민의 모습은 국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논의하는 민주적 소양을 갖춘 건전한 시민이 아닌 국가정책에 무조건 순응해야하는 어설픈 신민(臣民)일 뿐이다. 얼마 전 여당 국회의원이 영부인을 '국모'로 지칭한 것은 현 정권 인사들의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4대강 사업도 국가라는 절대적 실체가 백성을 위해 집행하는 완전무결한 과업으로 상정되어 사업에 대한 반대를 불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 정권의 4대강 사업은 강주변의 천재지변에 항시 시달리고 있는 가엽고 어린 백성들을 위해 마련된 치산/치수 사업이며, 그 과업을 이룩하여 백성에게 하사하겠다는 어진 임금의 덕치의 발현인가? 오히려 각종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법을 벗어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연자원이라는 귀중한 국가자산을 건설투기세력에게 팔아넘기는 마피아의 행태에 더 가깝지 않은가? 임금과 마피아 둘 중 어느 쪽이든 모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의 걸림돌인 4대강 사업
우리사회에 환경문제가 주된 쟁점으로 부각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이 추진되었고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제 환경문제가 환경만의 사안이 아닌 주된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다. 이것은 국토에 대한 인식을 국가적 차원에서 재고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제껏 국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면 이제는 국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당면하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의 동원요소로 국토를 보아 왔던 압축성장시대의 국토관에서 국민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맥락에서 자연과의 공존이 모색되어지는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아직도 전자의 국토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선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국토관 치고는 매우 구태적이고 후진적이다. 선진국가로의 도약을 원한다면 정부는 국토의 자연환경에 대한 철학 먼저 세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삶의 질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새로운 국토관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요구된다. 같은 맥락에서 4대강사업 논쟁도 어떤 국토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닿아 있다. 즉 4대강 논쟁 앞에 '기득권층의 국토관'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과 공존을 바라는 '국민을 위한 국토관'으로 전환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4대강사업은 새로운 국토관으로의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주권회복으로서 4대강 사업 반대
새로운 국토관을 설정해야 하는 지금의 이 시기, 구래의 국토관으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4대강 사업은 당연히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탈정치화시켜 탈쟁점화 시키려한다. 탈정치화과정에서 4대강사업은 국민적 논의대상이 아닌 국가 행정부의 권한으로 진행할 수 있는 행정사안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과정에서 국토에 대한 국민의 권리 행사는 차단당하게 되는 것이다. 국토에 대한 국민의 주권이 형해화되어 가는 속에서 민주주의는 토건경제의 늪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4대강 사업의 반대는 국토에 대한 국민 주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로 시끄럽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4대강사업 예산이 쟁점으로 떠 올랐다. 작년 말에 통과된 올해 4대강사업 예산으로 전국토의 강들은 이미 상당히 파괴되었다. 작년까지 국토의 주인이 국민이 아닌 건설족과 토건정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4대강 예산을 반드시 막아내서 국토의 주인이 국민임을 선언해야 한다. 4대강을 '저들의 4대강'에서 '국민의 4대강'으로 돌려 놓는 그 순간이 바로 국토에 대한 국민의 주권이 회복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디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국토내의 생태적으로 우수한 공간의 보전이라는 맥락에서 , 환경운동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공간이라는 상식만이 있었을 뿐, 그 이상의 문제의식은 없었다. 그것이 왜 꽤 잘 보전된 생태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왜 평화와 생명이라는 화두가 당위처럼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현실에서는 그 두 의미가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곳인지, 남북의 대치상태가 만들어 놓은 여러 뒤죽 박죽한 모순들이 집결되어있는 슬픈 공간인지에 대해서까지는 내 관심의 실타래가 닿지 않았었다. 그런 비어있는 상태로 10월 28일 아침 가까스로 탄 버스는 강원도 인제의 접경지대로 향해갔다.
인제 평화생명동산에 다다르고 잠시 주위 곳곳을 둘러본 후 곧 바로 디엠지 평화생명동산 정성헌 이사장의 평생동산관련 강의를 받았다. 꼿꼿한 자세와 차분한 목소리로 이 곳의 의미와 디엠지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서 원리원칙의 풍모가 베어났다. 강연 내용은 대체로 내게 가슴 깊게 다가왔으나 한가지, "환경운동가들이 디엠지에 관해 생태적/식생 중심으로 부분적 관심과 이해만 보이는 것 같아 평화적/정치적 부분 등 디엠지와 관련된 그 외 다른 문제들은 조금 등한시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요지의 발언은 처음 들었을때 이해하기 힘들었다. 디엠지 문제를 대할 때 부분적인 이해가 분명 장애요인일 수 있으나 그 것은 환경운동이라는 부분적인 운동을 하는 우리와 그 외 모두가 겪는 문제일 것 같다.
디엠지 전시실을 둘러보고 인제 향로봉으로 향했다. 절정기의 가을이 주는 화려한 아름다움은 없었지만 늦가을이 주는 한창 타오른 직후의 여유로운 빛깔과 가을산이 주는 안온함이 산을 오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가는 곳곳 군 시설과 군이 조성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산 중턱에 다다른 후 멀리서 다른 봉우리 사이 사이로 향로봉 정상부위가 보였다. 거기 까지였다. 향로봉 정상부 가까이로 가면 군/정보 기관 시설등이 들어서 있기에 더는 오를 수 없다는 말로 나를 포함해서 같이 간 사람들이 적 잖이 아쉬워 했다.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이 늦가울의 외투로 덮혀 있었다. 평온을 느꼈다.>
우리는 왜 그곳에 가고 싶어하고 그들을 보고 싶어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하는걸까? 같은 동포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는 답하기 힘든 질문인 것 같다. 향로봉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줄기도 우리의 상념과 고민을 깨끗이 씻어주지는 못했다.
<향로봉 계곡>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오르고 내리는 내내 향로봉에 있는 나무와 열매들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며 향로봉이 살아 숨쉬고 있는 보여주었다. 다만, 향로봉에 사는 야생동물은 발견하지 못해 아쉬웠다. 지난 1월 이곳을 찾았을때는 우리를 본 노루 한 마리가 잽싸게 나무 뒤로 숨어 있던 것을 봤지만 그날은 낯선 인간들을 경계하는 다람쥐의 경계소리만이 들려왔다. 수십년을 인간과 무관하게 지내온 그들이 자기들 한 본 보겠다고 산속을 헤메는 미련한 인간들에게 쉽게 다가오기는 힘들 것이다.
<향로봉에서 발견된 탄환. 향로봉은 아직까지도 남북의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보이는 너구리, 노루 등으로 보이는 야생동물의 발자국>
<향로봉의 야생화>
다음 날 19세기 전후 건립된 북방식 한옥과 초가집이 보존되어 있다는 고성왕곡마을을 들렸다. 근대가 오기전의, 남북이 갈라지기전의 고성 어딘가의 한반도의 평화로운 한 마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고성 왕곡마을>
곧 바로 거진등대 해맞이 산책길에 들려 해맞이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화진포 호수가의 아늑함을, 오른쪽으로는 동해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느꼈다.
<거진 등대 해맞이 산책길에서 보이는 동해의 절경>
곧 바로 화진포에 들려 이승만과 이기봉, 김일성의 별장을 내리 본 후 통일 전망대로 향했다. 맞은편에서 보는 동해에 걸친 금강산 끝자락이 철조망너머로 보였다. 갈 수 없는 땅을 바라 보며 이 곳의 이름이 왜 통일전망대란 의문이 들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금강산 끝자락 아래 봉우리에는 지오피와 군초가 놓여 있다. 통일은 볼 수 없고 분단의 현실만을 완고하게 보여준다. 그 사실이 내 뿜는 차가운 현실은 저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만을 내놓는다. 그 현실을 불편해 하지 않는듯한, 금강산을 배경으로 한 장에 만 오천원짜리 즉석사진을 찍는 놀이에 빠진 다른 관광객들이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동해에 걸쳐있는 금강산 끝자락>
<지금은 갈수 없는 금강산 육로관광길>
마지막으로 DMZ 박물관에 들려 분단의 역사와 유물을 볼 기회를 가졌다. 전시구성과 배치를 기대이상으로 잘 해 놓은 것 같다. 실제로 본 한국전쟁 정전협정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문서 몇 장으로 역사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60년이 된 지금 우리는 정전협정서라는 종이 조각이 만든 생각의 벽에서 얼마나 낳아갔는지 되묻게 된다.
<DMZ박물관에서 본 한국전쟁 정전협정서>
<DMZ박물관에서 본 한국전쟁 당시의 탄환과 철모>
생명과 평화는 무척 어울리는 단어이다. 환경활동가로서 무의식적으로 생명이란는 개념안에 평화를 담으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생명과 평화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담을 수 없는, 하나의 의미로 생각해야 할 단어인 것 같다. 디엠지에서 공생하고 있는 생명들의 모습에서 공존의 공간으로 그 곳을 만들고 싶다.
가을 주말의 나들이 인파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3시간을 지나 탈출하여 2주만에 다시 찾은 여주. 노랗게 익어가는 여주는 역시 가을이 어울리는 곳이다. 여주 남한강의 4대강 전 공사구간 수질모니터링을 일정상 급하게 진행을 계획으로 서둘러 움직였지만 가는 공사현장 곳곳의 참상을 기록 하는 일은 더뎌졌다. 가는 곳곳 마다 4대강 공사의 참상들이 나의 눈을 오래 도록 붙잡았기에...
남한강대교 아래의 강좌안의 습지는 아직 규모있게 공사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나 습지를 드나드는 제방길 입구를 공사차량 통제수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계속 진행 중이었다. 다리위에서 한눈에 보이는 가을의 남한강대교 습지는 아직 가을이 주는 생명의 여유을 가지고 있었지만 많이 우울해 보였다. 지난 여름 수질 모니터링을 하는 도중 내게 휴식처가 되어준 곳이다. 제방길을 들락거리는 굴착기 아래의 남한강대교 습지는 내게 빨리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는듯 했다.
며칠 전 공사중 멸종위기종 단양쑥부쟁이 파괴가 자행됐던 흥원창에 올랐다. 녹지였던 제방사면은 공사로 온통 헤집어져 있었고 보호펜스 안의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는 매운 위태해 보였다. 이 곳의 단양쑥부쟁이 서식지는 환경영향평가서상에 보고가 되어있지 않은 곳으로 4대강사업의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공사 시행자인 원주지방국토청이 단양쑥부쟁이 이식계획까지 제출한 곳이나 계획서 상에는 이식 후에 공사가 진행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식지도 조성되지 않은체 공사는 진행되었고 단양쑥부쟁이는 훼손 될데로 된 상태이다. 계획서상에는 선조치 후공사였으나 실제로는 선공사 후조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맞은편 삼합리습지쪽 준설공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곳에서도 지난 4월 보호펜스 밖에 단양쑥부쟁이가 다수 분포해 있었던 사실로 문제가 되었던 곳이었다. 비슷한 문제가 인접지역에서 또 다시 발생하는 것을 보면 공사관계자나 이곳 환경당국은 법의 준수의지가 없어 보였다. 하기는, 공사관계자와 정부의 그런 행태가 관련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진행한다면 내년까지 도저히 완공될 수 없는 4대강 사업의 본질일 것이다.
구남한강교 위를 올라가니 강 중간을 넘어 흙탕물을 내보내며 뻗어오는 가물막이가 보였다. 본격적으로 바위늪구비 맞은편의 강 좌안의 준설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중간에 길게 남아서 가물막이로 쓰인 바위늪구비 습지 가장자리 부분만이 한 때는 그 부분이 땅이였음을 알 게 해주었다.
강천보 현장은 상반기와 매우 달라져 있었다. 강천보와 맞은편 강우안의 암반쪽을 임시가교로 연결했으며 이호대교 밑에 가물막이를 둘러치고 한창 준설공사 중이었다. 가물막이 안의 물은 거의 빠진 상태로 어제, 10월 22일까지만해도 물을 빼면서 파닥거린 물고기들이 있었다고 한다. 차를 타고 공사현장 바로 위인 이호대교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비린내가 풍겨 올 정도였다. 가물막이 안 거대한 웅덩이 한가운데 강본류로 물이 빠지기전 물고기를 걸러내기위해 공사관계자가 쳐놓은 작은 그물이 걸려있었다. 그물 망 그멍보다 큰 물고기들은 걸릴 수도 있겠으나 그 보다 작은 물고기들은 양수 펌프기 안에서 죽어 갔을 모를 일이다. 오탁방지막을 뚫고 흘러가는 흙탕물은 이호대교 아래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탁도는 기준치가 넘은 64 NTU가 나왔다. 남한강의 물고기들은 자신들의 서식처가 파괴되어 죽고 물이 오염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강우안쪽에 꽤 규모있게 준설공사가 진행되는 여주대교와 세종대교 사이의 모래밭을 지난 후 강 좌안쪽 길로 갔다. 백서리섬쪽에서는 섬과 강좌안 사이에 물을 차단하고 대대적으로 준설중이었다. 여태껏 남한강 공사에서의 가물막이 규모로는 제일 큰 규모였던 것 같다. 백색리섬에 달라 붙은 굴착기와 덤프트럭들은 흡사 땅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탕 한 알에 달려드는 수십마리의 개미떼 같이 섬과 강바닥을 핧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겨울에 시작했던 4대강 남한강 구간의 공사는 봄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겨울로 가기 직전의 막바지 가을의 바람에 익어갔었던 예년의 여강(여주 남한강)은 온데 간데없고 4대강 죽이기 공사로 인한 흙탕물로 노랗게 물들어 가는, 우리들의 탐욕과 무관심에 멍들어 가는 여강만이 있었다. 가을을 잃어버린 여강이었다.
흙탕물이 하루가 멀다하고 공사구간의 강을 덮는다. 멸종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 주변에는 오늘도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왔다 갔다 하며 그들을 위협한다. 공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비오는 날 눈오는 날도 가리지 않고 계속 된다. 그야 말로 초고속의 공사로 강은 땅이 되고 흙더미는 산더미가 된다. 옛날 북한의 천리마 운동처럼 일사불란한 속도전이 국토를 대상으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랑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속도전인가? 4대강 완공기간으로서는 대책없이 촉박한 2년이란 시간 안에 공사기한을 억지로 구겨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4대강 사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를 넘어 왜 이렇게 빨리도 진행 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 4대강 삽질을 끝내고 그 삽질을 그럴듯한 정권의 치적으로 만들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우기(雨期) 전에 현재 진행하고있는 하도정비를 상당히 진척시켜 지금의 삽질을 물리적으로 ‘불가역적 삽질’로 만들려는 것일 게다.
이렇게 속도전으로 진행되고있는 4대강 공사를 이 정권은 아주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청계천 복원을 2년 만에 해치운 무대뽀 솜씨를 4대강 공사에도 발휘하고 싶은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은 알겠지만 대형토목사업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가는 국가원수의 뜻을 받드는 전체주의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이 정권이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일류 선진국들은 거꾸로 장기간 세심한 설계와 국민의 의견수렴을 충분히 거친 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느릿 느릿하게 진행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한국이 세계를 선도할 기반이 어렵게 갖추어 졌건만 이제 초고속 삽질로 모든 것이 후퇴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은 말이 없다
무엇보다 환경적 측면에서 공기단축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가물막이 안의 흙탕물을 침전도 시키기 전에 펌핑으로 본류로 방류하는 가 하면 가물막이 한 쪽을 파내어 가물막이 안의 물을 그대로 본류에 방류하는 모습은 남한강 공사구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 흙탕물은 이들이 쳐 놓은 2중 3중의 오탁방지막을 잘도 통과해서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을 향해 흘러간다. 심지어 일부 저수위의 강에서는 가물막이를 치지 안고 그대로 준설을 하면서 강 주위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다. 모두 공기를 단축 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 된 것이다.


또한 멸종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의 현 분포지역이나 서식여건 등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도 않고 대체서식지로의 이식 운운하며 그 주위를 삽질로 파헤치겠다는 계획은 공사에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겠다는 정부의 무지막지함을 보여준다.

멸종위기종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그것을 멸종위기에 처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오탁방지막은 공사 중 흘러나오는 오탁수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지 지금처럼 오탁투과막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현정권은 비경제적인 4대강 사업을 추진했고 불법적으로 그것을 강행했다. 4대강 사업의 비경제성과 공사강행의 불법성은 여기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속도전으로 치닻고 있는 4대강 공사의 반환경성은 이들이 끝없이 내보내는 오탁수와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4대강의 동식물들을 볼때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사라지는 것들은 말이 없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누군가는 대신 말해주고 싸워야 한다. 2년이란 촉박한 시간으로 온 강산을 직선의 땅으로, 자본의 땅으로 바꿔 놓겠다는 망상이 통할 수 있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닐 것이고 민주적인 사회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역사에서 ‘진실의 맥(脈)’은 가늘게나마 도도히 흘러왔고 그 가늘고 긴 맥이 있어 우리는 이 정도나마 인간다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녹색성장이란 가면속에서 회색성장으로 이 나라를 초고속으로 퇴보시키는 이 정권의 좋은 날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짓밟고 있는 저 강에도 진실의 맥은 흐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고용기회는 더 적어지고 유리천장은 더욱 단단해지는 이 고용없는 성장시대에 저출산문제를 여성개인들의 문제인양 다루는 점도 문제지만, 출산을 여자에게 지워진 하나의 신성한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것 같아서 참 불쾌하다. 마치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제국시대때 신여성을 표방한 단체를 포함한 여러 일본 부녀자 단체에서 천황의 뜻을 만세에 드넓히자며 '국가를 위한 여성계몽'을 외친것을 연상케 한다.
10년 민주당 정권에서는 대학이 신자유주의에 함몰되어 가는 것을 느꼈는데 명박정권들어 대학이 국가에 함몰되어 가고 있다. 국가라는 괴물의 아가리에서 스멀스멀 거리며 기어 나오는 혀는 머뭇거림없이 우리 모두를 핧고 조이고 감염시키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를 이끌어 왔었던 것은 '근면'이었던것 같다. 적어도 포드주의생산체제하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근면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었고 노동자도 자신들의 근면으로 가족임금이상을 벌어 생활을 해 나갈수 있었던 같다. 그러나 노동자의 근면과 성실만으로 가족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고 그 이외에 플러서 알파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것을 포스트포드주의 체제라고 부르는것 같다.
포드주의시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자연재와 노동의 무한투입으로 작동되었는데 노동의 근면성은 이 자원의 무한투입을 가속화시켜 고도성장을 달성하는데 있어 충분조건에 가까운 필요조건으로 기능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지구생태부하압력의 급증은 자연자원투입의 한계를, 절정에 다다른 자본의 유기적구성은 잉여노동의 가치의 저하를 나타내고 있어 고도성장에 대한 노동의 근면성의 기여도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것 같다. 오히려 투기적 행위를 프로다운 경제행위로 여기는 독적금융자본시대에서 항시적인 근면함이란 미련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근대 산업사회에서 산업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공통의사회경제적 가치로서 여겨졌던 '자조론'의 근면/성실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고도산업국가에서도 뼛빠지게 일만 해봐야 입에 풀칠하기도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동자의 자녀도 사교육을 받는것이 기본이 된 이 시대에 그 '풀칠'의 기준은 날로 날로 높아져가는데...
초기 괴물같은 자본주의가 좌파의 예리하고 저돌적인 공세를 물리치면서까지 19세기를 넘겼고 강대한 적으로 부상한 공산권세계와의 대결을 승리하면서 20세기를 넘길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계급을 초월해서 근면함과 성실함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서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유지하며 그에 부합되는 물질적 결실을 이룬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근면이란 가치의 충분조건성이 부수적인 필요조건으로 강등된 이 시대에 노동자가 주식투자를 함으로서 주시하는 수익률이란 하나의 가치 이외에,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공통된 가치를 찾기는 어려워 졌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근면/성실의 가치만으로 원활히 작동되는 옛날의 그 체제로 복귀하지 못한다면 이번 세기를 버티기 힘들것 같다.

